미국 AI 영상 생성 플랫폼 힉스필드(Higgsfield)는 서울을 아시아 첫 거점으로 선택했다. 김민성 힉스필드 아시아태평양(APAC) 디렉터는 인터뷰에서 서울을 택한 이유와 제품, 한국 시장 전략을 설명했다. 김 디렉터는 지난 5월 서울에 부임했다.
힉스필드는 2023년 설립된 샌프란시스코 기반 AI 영상 생성 플랫폼 스타트업이다. 공동 창업자는 알렉스 마슈라보프와 에르자트 둘라트로, 두 사람은 스냅에서 생성형 AI를 맡았다. 김 디렉터는 마케팅 업계에서 15년 넘게 일했고 아드리엘 부대표를 지냈다.
서울을 아시아 첫 거점으로 택한 이유
김 디렉터는 서울 선택의 배경으로 기술보다 산업 구조를 꼽았다. 그는 K팝, 드라마, 광고, 웹툰까지 시각 콘텐츠에 의존하는 산업들이 촘촘하게 연결돼 있고, 이 산업들이 이미 글로벌 플랫폼을 겨냥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진출을 전제로 한 콘텐츠 수요가 높다는 얘기다.
여기에 생성형 AI가 제작 속도의 병목을 풀어주면서 한국에서 채택이 급격히 빨라졌다는 것이 김 디렉터의 설명이다. 힉스필드가 한국을 아시아 확장의 출발점으로 삼은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이 인공지능(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 자체에서는 글로벌 빅테크에 비해 다소 늦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모델을 활용하는 역량에서는 한국이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직접 개발 대신 모델을 조합하는 플랫폼
힉스필드는 직접 모델을 개발하는 대신 여러 모델을 한 플랫폼에서 선택·조합하는 오케스트레이터·애그리게이터 모델을 택했다. 플랫폼에는 영상 모델 7종과 이미지 모델 4종, 합계 11종이 탑재돼 있다. 바이트댄스의 시댄스, 콰이쇼우의 클링, 오픈AI의 소라, 구글의 Veo 같은 영상 모델이 여기에 들어간다. 자체 개발한 캐릭터·톤 일관성 유지 기능 계열로는 소울(Soul)이 있다.
올해 상반기 선보인 슈퍼컴퓨터(Supercomputer)는 에이전트가 작업 단계별로 모델을 자동 선택·실행하는 제품이다. 화면에는 모델명 대신 auto가 표시된다. 사용자가 매번 모델 성능을 비교하고 고르는 과정을 줄이기 위해서다.
김 디렉터는 장편 영상 하나를 만들 때 보통 4개 이상의 엔진을 조합한다고 설명했다. 엔진마다 결과가 다르고 최고 성능 모델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어떤 작업에 어떤 모델을 조합할지가 하나의 기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스튜디오로 기업 수요 공략
기업 수요는 마케팅 스튜디오(Marketing Studio)와 슈퍼컴퓨터 2.0으로 공략한다. 마케팅 스튜디오는 리테일이나 아마존의 제품 페이지 주소를 붙여 넣으면 광고 영상과 이커머스 소재, UGC 형식의 리뷰 영상을 생성하는 제품이다. 6월 내놓은 슈퍼컴퓨터 2.0은 엔비디아의 에이전트 툴킷을 기반으로 했고, 20종 넘는 제작 파이프라인을 더했다.
대기업 도입을 고려해 데이터 유출을 걸러내는 정책 가드레일과 에이전트 권한 제어 기능도 넣었다. 컴플라이언스 팀을 위한 감사 추적 기능은 출시 시점 기준 로드맵 단계다.

회사 발표 기준으로 마케팅 스튜디오는 공개 첫 30일간 마케터 6만8000명이 모였다. 현재 플랫폼을 쓰는 기업은 6개 대륙 1만2000여 개이고, 전체 활동 중 상업 광고 비중은 70%다.
한국 현지 기업 도입과 시장 변화
국내에서는 광고·마케팅 그룹 FSN과 계열사 부스터즈, 애드쿠아가 지난 6월 힉스필드 엔터프라이즈 솔루션을 도입했다. 이들은 8월 코엑스에서 열린 AI 서밋에도 참가했다.
김 디렉터는 한국 시장이 달라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컴플라이언스와 법무 검토까지 필요한 대기업급 문의가 늘고 있으며, 얼리어답터 실험에서 정식 도입을 검토하는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글로벌 플랫폼의 한계도 짚었다. 글로벌 플랫폼은 표준화될 수밖에 없어 아시아에서 구조적으로 지는 지점이 있다는 설명이다. 반대로 이런 표준화가 국내 솔루션이 갖추기 어려운 확장성과 빠른 모델 업데이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그의 표현으로는 “이게 글로벌 솔루션이 지는 지점이라면 지는 지점이다”.
콘텐츠 직접 진출은 없다
힉스필드는 지난해 8월 AI 아이돌 키온(Kion)을 공개했고, 올해 AI 걸그룹 제피어(Zephyr)를 선보였다. 제피어 제작에는 5일이 걸렸다. 힉스필드가 콘텐츠 제작까지 직접 진출할 가능성에 대해 김 디렉터는 선을 그었다.
“K팝이든 영화든 콘텐츠 시장에 직접 진출할 계획도 의향도 없습니다. 키온과 제피어는 이 플랫폼으로 실제로 무엇까지 만들 수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한 자체 실험이자 쇼케이스였고, 상업적 목적을 위한 자체 제작을 계속 이어갈 계획은 없습니다.”
그는 또 힉스필드의 역할을 “힉스필드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플랫폼을 제공하는 회사입니다. 저희의 역할은 이 플랫폼을 활용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 하는 크리에이터와 제작사를 지원하는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투자 유치와 시장 규모
힉스필드는 올해 1월 13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8월 시리즈B에서는 4억 달러를 유치했고, 한국 투자사 미래에셋캐피탈이 참여했다. 시리즈B 후 기업가치는 54억 달러로, 8개월 만에 네 배 이상 올랐다.
회사 발표 기준 연환산 매출은 7억 달러다. 사용자는 238개국 3000만 명이고, 포춘 500대 기업 가운데 390곳이 이 플랫폼을 쓴다.
시장 규모 추산은 기관마다 다르다. 그랜드뷰리서치는 올해 AI 영상 생성기 시장을 9억4600만 달러로 추산했다. 편집·워크플로 도구까지 포함하면 메티큘러스리서치 기준 36억7000만 달러다. 메티큘러스리서치는 2036년 시장 규모를 248억9000만 달러로 전망했다. AI 영상 시장을 어디까지 포함해 계산할지 기준은 아직 정리 중이다.
IP·규제 대응
특정 인물과 IP는 기본적으로 차단된다. 실제 소유 기업이 권리를 확인하면 제한이 해제되는 구조다.
김 디렉터는 한국 AI 기본법이 요구하는 표시 의무 등 로컬 규제 대응과 관련해 “한국 AI 기본법이 요구하는 표시 의무 등 로컬 규제 대응은 검토하고 있고, 필요하다면 한국 시장에 한해 별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 기본법은 올해 1월 22일 시행됐다. 현재 힉스필드는 AI 생성물 표시를 자동으로 삽입하지 않는다.